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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숨 값은 얼마입니까?

 
당신의 목숨 값은 얼마입니까?
환자단체연합회, 제11회 ‘환자샤우팅카페’ 개최해 생명보다 이윤 쫓는 한국사회 현실 꼬집어

윤명주 환자리포트 기자


“생명과 돈 중에 한 가지 선택하라고 했을 때 돈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8월 26일, 종각역 ‘엠스퀘어’에서 최현정 MBC 아나운서의 사회로 제11회 ‘환자샤우팅카페’가 열렸다. 안전한 의료현장 만들기보다 이윤을 내는 데 혈안인 일부 의료인으로 인해 사망한 아이의 아버지, 돈이 없어 생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어이없는 상황에 빠진 4기 폐암 환자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무대에 섰다.


한달 약값 천만원, 폐암 치료제 ‘잴코리’ 건강보험 급여화 시급해

박소연 씨(30세)는 비소세포 선암으로 9년째 투병 중이다. 폐암 관련 항암제란 항암제는 모두 복용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1년 전부터 마지막 치료제라 할 수 있는 ‘잴코리’를 복용하고 있다. ‘잴코리’를 복용한 후 3일 만에 박 씨는 상태가 호전되었음을 피부로 느꼈다. 하지만 ‘잴코리’를 계속 복용하기 위해서는 한 달 약값에만 천만 원을 들여야 하는 상황. 기초생활수급자로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박 씨는 약값의 대부분을 복지단체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그마저도 다 써버려 당장 다음 주에 병원에 가서 약 처방 받을 일이 걱정인 소연 씨. 한때 약값 부담이 너무 커 잴코리 복용을 중단했지만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응급실에 실려 간 경험도 있다. 사회복지사 도움을 받아 라디오방송에도 출연해 후원금 모금도 해봤지만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 자리에 섰다는 소연 씨는 그동안 고생한 엄마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폐암을 이겨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폐암 4기 투병 9년째인 박소연 씨는 한 달에 천만 원이 드는 폐암치료제 ‘잴코리’를 복용한 후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당장 다음 달 약값을 마련하지 못해 걱정이 크다.



민간보험사의 실손보험, 입원한 병원에서 처방받고 복용한 경우만 보험금 지급

폐암 투병 5년째인 김경희 씨(34세)는 작년 9월부터 잴코리를 복용했다. 김 씨는 메리츠화재 보험회사의 실손형 보험에 가입하고 있어 12월에 보험금 청구를 했다. 3천만 원 한도 내에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 세 달 정도는 약값 걱정을 덜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두 번 보험금 지급을 받은 후 세 번째 달에 보험회사에 연락을 해보니 “손해사정인에게 의뢰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뭔가 좀 알아보려 결심한 순간 법원에서 소장을 보내왔다. 보험회사에서 앞서 받은 두 달 분의 보험금을 환수하라는 내용의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당시 입원한 병원에서 처방받고 입원 중에 복용한 이틀 분의 약에 대해서만 보장을 해준다는 게 보험회사의 입장이었어요. 실손형 보험이 그런 거라면 누가 보험을 들겠어요? 잴코리 약값이 비싸서 보장을 안 해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보험에 가입했다 졸지에 피고의 입장이 된 김 씨는 자신이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소송에 임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폐암 투병에 소송까지, 몸도 마음도 힘들 것이 분명한 싸움이지만 비싼 약을 먹는 암 환자들이 보험회사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번 일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문단으로 ‘환자샤우팅카페’에 참석한 구영신 변호사는 “약관에 비보장 항목에 대해 나와 있지만 퇴원약이 비보장이라는 내용은 없다”며 “이런 사실이 이슈화되면 실손 보험에 가입할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해당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기간에 처방이 되었다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보험회사와의 소송이 부담이 되지만 자신이 포기하면 나쁜 선례를 남겨 다른 암 환자들이 또 다른 소송에 휘말릴까 염려된다는 김경희 씨. 실손보험에 가입했으나 보험사는 퇴원 후 약값은 보장해 줄 수 없다며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한 지유 아빠 서동균 씨, 지유 같은 허망한 죽음 없도록 시스템 개선에 앞장설 것

세 번째로 발언에 나선 서동균 씨. 골절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한 9살 서지유 어린이의 아빠다. 지유를 잃은 지 3개월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도 지유의 사망에 책임이 있는 병원 측의 사과는 받지 못했다.

“오늘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변호사를 만나서 민사소송 접수하기로 얘기 나누고 있는데 부검의가 전화를 해왔습니다. 저산소성 뇌손상 말고 다른 이상 소견은 없는 걸로 결론이 났습니다.”

지난 5월 16일, 지유는 학교 운동장 놀이기구에서 떨어져 천안에서는 유명하다는 천안의 모 정형외과에 입원해 19일 골절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를 한 지유는 수술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회복실로 옮겨지지 않았다. 5시 30분경 수술실로 불려간 지유 엄마는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고 말았다. 우왕좌왕 하는 사람들 속에서 의사 혼자 지유에게 CPR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가족들의 요구를 수차례 묵살했던 의료진이 뒤늦게 순천향대병원에 이송 요청을 했고 결국 8시 48분 지유는 숨을 거뒀다.

“입원 후부터 수술 당일까지 지유의 상태가 별로 안 좋았습니다. 코피에 열까지 있었어요. 병원에서 취한 조치라고는 가습기를 틀어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골절 수술을 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됐죠. 의료 기록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고... 나중에 확인해 보니 병원의 인력 중에 간호사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유 아빠는 장례가 끝난 후 5월 29일부터 천안고속버스터미널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해당 병원의 마취전문의가 지유 유족 앞으로 편지를 남긴 상태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6월 9일 이후에는 그것마저 그만 두었다. 유족들은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외국으로 피해가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선 집사람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유의 부검 결과를 듣고 나서는 이 일을 더 크게 이슈화해서 이윤만 쫓는 병원에 희생되는 사례가 없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사진] 골절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한 9살 지유의 아빠 서동균 씨는 허술한 의료 시스템 및 관계기관의 부실한 감독과 관리로 인해 허망하게 사망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자문단의 권용진 서울시립북부병원장은 “전에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맹골수도를 지나가고 있는 세월호와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지유 사건은 세월호와 많이 닮아 있다. 이 일이 크게 이슈화 되어서 의료 시스템이 개선되는 데까지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샤우팅 카페에는 ‘환자안전법(일명 종현이법)’이 현재 국회에서 심의되기까지 큰 역할을 해온 종현이 엄마 김영희 씨도 참석해 발언했다. 김 씨는 “종현이 죽음으로 가슴에 구멍이 나고 가슴으로 너무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종현이 일을 알리고 환자안전법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희망을 많이 보았다”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환자샤우팅카페를 통해 지유 아버님께서도 지유 죽음의 의미를 찾으셨으면 좋겠다”며 “제2의 지유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제도를 바꿔야 할지 함께 찾아보고 환자단체연합회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마무리했다.

[동영상] 8월 26일, 최현정 MBC 아나운서의 사회로 제11회 ‘환자샤우팅카페’가 열렸다. 이번 ‘환자샤우팅카페’에서는 골절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한 서지유 어린이의 아빠 서동균 씨와 한달 약값 천만 원인 ‘잴코리’를 복용하고 있는 폐암 4기 환자인 박소연, 김경희 씨가 발언자로 나섰다.